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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생존 작전 ▬ 청띠신선나비 애벌레

이지우 작가 | 기사입력 2022/03/13 [07:28]

【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생존 작전 ▬ 청띠신선나비 애벌레

이지우 작가 | 입력 : 2022/03/13 [07:28]

이지우 작가 약력:『현대수필』 수필등단, 『시현실』 시등단저서: 생태에세이『푸름에 홀릭』2쇄

 

 

나무는 봄부터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병충해 등을 견디며 길게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나이테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의 절정에서 고생한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린다. 철저히 겨울 준비가 끝났기에 미세한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나무와 이별도, 덜어내기 작업도 과감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자연에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기에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한다. 이런 모습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머리말 중에서-

 

 

 

 

생존 작전   ▬ 청띠신선나비 애벌레

 

▲ 청띠신선나비 애벌레

 

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숲을 지나가다 눈에 띄는 애벌레를 만났다. 청가시덩굴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눈에 띈 애벌레다. 이놈은 무시무시한 가시를 온몸에 달고 있어 만질 수가 없다. 애벌레의 고슴도치라고 해야 하나. 먹는 식초는 청가시덩굴만 먹는다. 잎의 가장자리부터 사각거리며 열심히 먹어 대고 커다란 똥을 한 덩어리씩 싸 놓는다. 마치 한약방에서 파는 약제 환같이 생긴 똥이 바닥에 수북하다. 잘 먹고 예쁜 나비로 나오렴.

 

청가시덩굴에도 가시가 있고 이 녀석도 온몸을 하얀 가시를 덮고 있는데 이놈이 더 강한 모양이다. 가시가 있는 식물을 식초食草로 삼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분이 보기에는 이래도 귀한 나비가 나올 거니까 가지고 가서 관찰해보란다. 궁금한 생각에 나는 애벌레를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하루 이틀 열심히 먹고 자고 싸고 하던 놈이 거동을 안 한다. 자세히 보니 피부 가시 사이로 하얀 묵처럼 보이는 것이 수북하다. 이상하다.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이게 뭘까 하고 루페로 자세히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기생벌의 애벌레가 디글디글 피부를 뚫고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어머나, 이를 어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는다. 내 몸에 오글거리는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인데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기생 당한 청띠신선나비 애벌레를 넋 놓고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만난 애벌레는 피부가 윤기도 나고 탱탱한 게 건강해 보인다. 나는 소중하게 다루며 애벌레를 집으로 데려와 또 한번 희망을 품는다. 이 벌레가 청띠신선나비가 되는 과정을 이번에는 자세히 관찰해야지.

 

애벌레를 데려다 놓고 외출 후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 녀석은 식성이 좋아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먹이가 동이나 잎의 살은 없고 뻣뻣한 잎맥만 보이는 게 아닌가. 밤새 굶을까 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밤 11시에 산으로는 못 가겠고 율동공원 입구 쪽에서 보았던 청가시덩굴이 있던 곳이 생각나 달려 가보니 역시 싱싱한 청가시덩굴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래. 애벌레야 조금만 기다려 싱싱한 잎을 가져다 줄 테니.’ 여린 잎으로만 몇 장을 따가지고 왔다.

 

▲ 청띠신선나비 애벌레의 온몸이 가시로 덮여 있다

▲ 청띠신선나비     ©골든타임즈

 

그날 이후 나는 통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얘야, 너의 변신을 언제 보여줄 거니?’ 들뜬 마음으로 날마다 관찰하던 어느 날, 어째 애벌레의 몸놀림이 이상함을 발견한다. 몸부림일까? 아니면 번데기가 되기 위해 번데기 집 지을 자리를 잡으려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마치 자학하듯이 곤충통벽을 오르다 떨어지고 오르다 떨어지기를 계속 반복한다. ‘아, 나비가 되는 과정이 저리도 힘든 거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일정이 바쁜지라 애벌레를 만나지 못한 채 외출하고 돌아왔다. ‘아차, 애벌레!’하며 애벌레가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이상하다. 건넛방으로 들어 서는데 싸늘한 기온이 느껴진다. 통 안, 또 하얗게 변해버린 청띠신선나비애벌레….

 

‘에이, 나쁜 기생벌.’

 

‘또….’

 

번데기가 되기는커녕 애벌레 시절에 기생벌에 숙주를 당해 생을 마감한 애벌레를 보며 나는 한동안 얼음이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생벌이란 이름은 그냥붙인 게 아닌 모양이다. 다른 애벌레의 몸에 자신의 알을 낳아 다른 애벌레가 수고한 양분을 먹여 키우다니! 기생벌만의 생존전략이라지만 저렇게 열심히 먹고 살을 찌워 번데기와 나비가 되어보기도 전에 기생 당한 애벌레의 죽음을 보며 나는 가슴이 아팠다.

 

이제, 다시는 애벌레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하얀 구더기처럼 생긴 애벌레가 청띠신선나비애벌레의 온몸에서 춤을 추며 나오던 기생벌 애벌레의 모습이 생각났다. 순간, 마치 나의 온몸에서 벌레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얼른 청띠신선나비 애벌레를 청가시덩굴 잎만 골라 넓게 몇 겹으로 편 후 애벌레를 동그랗게 말아 놓고는 가시가 없는 쪽의 줄기로 꼭꼭 싸서 탄천으로 갔다. 볕이 잘 드는 양지쪽 땅을 조금 파서 묻어 준 후 땅을 정성스레 꼭꼭 눌러주고는 먹먹해진 마음을 달래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본다. 저녁 햇살이 붉다. 아니 검다.

 

 

다음 생애는 기생 당하지 말고 예쁜 청띠신선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녀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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