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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기생식물과 기생충 ▬ 미국실새삼

이지우 작가 | 기사입력 2022/03/20 [19:27]

【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기생식물과 기생충 ▬ 미국실새삼

이지우 작가 | 입력 : 2022/03/20 [19:27]

 

▲ 이지우 작가약력:『현대수필』 수필등단, 『시현실』 시등단저서: 생태에세이『푸름에 홀릭』2쇄

 

나무는 봄부터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병충해 등을 견디며 길게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나이테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의 절정에서 고생한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린다철저히 겨울 준비가 끝났기에 미세한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나무와 이별도덜어내기 작업도 과감하게 한다마지막까지 자연에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기에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한다이런 모습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기생식물과 기생충    ▬ 미국실새삼

 

▲ 미국실새삼의 꽃과 여러가닥의 줄기     ©골든타임즈

 

초록의 풀 위에 노란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자라는 미국실새삼은 풀숲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기생식물이다탄천을 걷는데 아주머니  분이 뭔가를 열심히 뜯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무얼 그리 열심히 뜯으세요?”라고 묻자 이것이 약이 된다고 티브이에 나오기에 뜯으러 나왔다고 한다매스컴의 위력을   번 느낀다.

몸에 좋다고 하면 무조건 채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좋은 약도 체질과 약효를 알고 먹어야지 무조건 먹는다고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라고.

 

탄천 변에 있는 쑥대를 노란 줄로 칭칭 감고 올라오는 놈이 있다가시털이 많은 환삼덩굴에는 아예 노란 이불이 되어 덮어주고 있다환삼덩굴에 착 붙어 있는 미국실새삼을 몇 가닥 떼어내 루페로 관찰한다가는 줄기에 오징어 다리같이 생긴 빨판 모양이 붙어 있다 빨판으로 다른 식물에  붙어 감고 있으니 기생당하는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미국실새삼-빨판 모양이 다른 식물에 붙어 있는 모습

 

환삼덩굴도 번식률로 따지면 만만치 않다그런데 이렇게 강한 미국실새삼이 나타나  가닥도 아닌 여러 가닥의 줄기를 뻗어 덮어버리니 과연 누가 승자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이렇게 미국실새삼은 다른 식물의 관다발에 자신의 줄기를 꽂아 영양분을 빼앗아 먹으며 자란다스스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일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없어  편해서 좋을 듯하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성향이 있다 우물을 파야 한다지만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것은 경험을 통해 습득한다.

 

새로운 모임에 갔을 때의 일이다아이디어 회의  좋은 생각이 나기에 즉흥적으로 다 풀어놓았다그리고 며칠 지났는데 아뿔싸옆에 있던 친구가 마치 자기가 생각해낸 것처럼 이야기하는  아닌가다른 모임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한다듣고 있던 사람이 나의 아이디어를 자기 생각인  발표를 한다.

 

이건 아닌데.’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입을 다물어야지.

 

어디서든 내 생각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그러다 보니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혼자 머릿속으로만 가지고 있고 기록마저 없으니 세상  구경도 못하고 소멸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건 더더욱 아닌데.’

 

어찌 처신해야 옳은지무엇이 정답일까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우월주의에 빠져 사는 삶보다는 나를 내어주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텐데.

 

인간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살기 위해 치열하지 않은 게 없는  같다자연에서의 치열함은 조화이고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생각에 머문다.

 

지나가는 남자분의 손에도  무더기 노란 실타래가 쥐어져 있다미국실새삼이다.

나는  식물을 보면 기생충이 생각난다배가 살살 아프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나는 약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약을 먹어  몸속에 있는 미국실새삼을 떼어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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