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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낯선 안내자 ▬ 길앞잡이

이지우 작가 | 기사입력 2022/04/04 [09:38]

【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 낯선 안내자 ▬ 길앞잡이

이지우 작가 | 입력 : 2022/04/04 [09:38]

 

▲ 이지우 작가약력:『현대수필』 수필등단, 『시현실』 시등단저서: 생태에세이『푸름에 홀릭』2쇄

 

나무는 봄부터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병충해 등을 견디며 길게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나이테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의 절정에서 고생한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린다철저히 겨울 준비가 끝났기에 미세한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나무와 이별도덜어내기 작업도 과감하게 한다마지막까지 자연에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기에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한다이런 모습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낯선 안내자   ▬ 길앞잡이

 

 

▲ 출처=http://cafe.daum.net/gyuniv/hinz/48

 

몇 년 전 금토산을 찾았다. 오후 3시의 숲은 고요하고 한적하다. 그 시간대 숲길에는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 숲에서 내려갔기 때문에 산책로는 더욱 한산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이 분위기를 즐기며 산책을 하는데 후드득하고 내 앞을 날아가는 길앞잡이를 만났다. 색이 화려하다. 몇 미터 앞으로 날아가 사람이 다가오는 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딱정벌레류 중 가장 화려한 자연색을 가진 친구를 만나다니 흥분되는 순간이다. 조물주의 은총을 혼자 받지 않고야 이렇게 화려하고 멋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툭 튀어나온 눈, 날카로운 턱, 화려한 색의 옷을 입은 날개, 정말 아무리 봐도 이 곤충은 예술작품 같다.

 

 

성충에 비해 애벌레 시절은 흉측할 정도로 못생겼다. 땅속에 일직선으로 구멍을 뚫고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곤충을 재빠르게 잡아먹는 위장술을 쓴다. 턱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사냥을 하면 백발백중이다. 사실 나는 길앞잡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 앞잡이 노릇 하던 사람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숲길에서 한 발 한 발 따라가다 이 곤충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모르쇠하고 있다가 가까워지면 휙 날아간다. 멀리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몇 미터만 날아가 앉아있다가 사람이 1~2미터쯤 다가오는 진동을 느끼면 다시 몇 미터 앞으로 날아가 사람이 다가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알아보니 이런 행동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멀리 날아가기 전에 시야가 흐려지기 때문에 날아가다 쉬는 동작을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대신 시력이 시원치가 않다는 것을 알고는 공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 '길앞잡이’ 화려한 색 때문에 한번 만난 사람은 갖고 싶어 한다.출처=http://blog.paran.com/darkfoto

 

그날 이후 금토산에 갈 때마다 자주 만났으며 특히 묵 논 쪽에는 애벌레 구멍이 여기저기 뻥뻥 뚫려 있었고 구멍 속에 있는 애벌레가 궁금했으나 성충을 볼 마음에 그냥 지나치곤 했다.

 

얼마 전 그 장소에 공사 차량이 들락거렸고 주변은 정비되어 좀작살나무 등이 식재되었으며 바닥에는 야자수로 엮은 가마니가 흙의 손실을 막기 위해 땅을 덮어버렸다. 공사 후 최근에는 모두 이사를 하였는지 통 만날 수가 없다.

 

길앞잡이, 가까이 다가가면 잡힐 듯, 놀리듯 날아가서 심심하지 않게 따라가며 장난치고 걷던 숲길이지만, 지금 이 장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길앞잡이를 혹시나 만날까 하는 기대심리로 걷는다. 나는 그때의 그 숲이 그립다.

 

지금은 변화된 숲길. 개발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명암의 한 단면을 길앞잡이라는 곤충을 통해 실감한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걷다 보니 유아 숲 체험원 가는 방향이라는 화살표가 그려진 안내 표지판만이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낯선 길앞잡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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