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1. 먹는 자 먹히는 자■ 변신의 꿈을 접다 ▬ 산호랑나비 애벌레
나무는 봄부터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병충해 등을 견디며 길게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나이테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의 절정에서 고생한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린다. 철저히 겨울 준비가 끝났기에 미세한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나무와 이별도, 덜어내기 작업도 과감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자연에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기에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한다. 이런 모습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변신의 꿈을 접다 ▬ 산호랑나비 애벌레
바람이 심하다. 신경 쓰지 말고 놀러 오라는 형부 말에 친구 6명을 데리고 형부네 곤지암 농장을 찾았다. 농장에는 상추, 고추, 도라지, 땅콩에 토종닭까지 키우는데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점심 식사를 위해 달려온 마음과 짐을 풀었다.
마당 한쪽에 움푹 들어가 물이 고인 곳에 애벌레가 빠져 꿈틀거리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나는 물속에서 얼른 건져 살핀다. 산호랑나비 애벌레였다. 5령은 된 듯 몸집이 크고 귀엽다. 어쩌다 물웅덩이에 빠졌는지, 강한 바람에 이곳까지 날아온 걸까. 주변을 보니 뽕나무만 있는데 어디서 떨어졌을까?
이 친구는 산형과 식물만 먹는 애벌레이기에 먹이를 몇 잎 따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의 개인적인 이기심이 발동해 애벌레를 관찰하고 번데기 시절을 거쳐 나비가 되는 변신 과정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집에 데려온 지 이틀이 지났다. 내가 보기에는 곧 번데기가 될 듯 먹이를 엄청 먹어 대고 똥도 많이 싸놓는다. 책상 위에 놓고 책을 보고 있는데 엄청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행동이 이상하다. 먹이는 입에도 안 대고 발작하듯 온몸을 떨어댄다.
왜 이러지, 종일 몸부림치며 떠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번데기가 되기 위한 옷 입기가 이리도 힘든 걸까. 몸부림은 고통을 호소하듯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애절하다. 대화가 통하면 좋으련만, 안타까운 마음에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 애벌레 통을 들여다보니 변신을 하는 중이다. ‘바로 이거….’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거였는데 지금 머리부터 스르르 다른 옷을 입고 있다. 머리 부분부터 번데기 탈을 쓴 채 반은 아직 애벌레 모습을 하고 있다. 나머지 변신을 기다리며 시간에 궁금증을 묻고 자세히 보고 있다. 서서히 옷을 갈아입고 있는 옷…, 많은 시간이 지났다. 가끔 잔떨림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변화가 없다.
‘애벌레야, 이러면 안돼, 힘을 더 내라고….’
‘변신은 어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고정하고 살피고 있다. 더 이상 움직임이 없다. 물에 빠진 것을 살려 번데기와 나비가 되면 날려 보내려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번데기 옷을 입다 말고 생을 마감하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며칠 전 농장에서 한 친구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이왕에 태어날 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억울해. 이 나이에 그런 꿈을 꾼다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인가.”라며 큰 소리로 떠들던 친구의 허한 웃음소리가 허공을 치고 나간다.
“미인의 꿈, 재벌의 꿈, 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들에 대해서 이제는 그 꿈들을 이제는 모두 접어야겠어.” 하던 친구 말이 변신의 꿈을 반으로 접은 애벌레에 투영된다. <저작권자 ⓒ 골든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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