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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2. 야생적 유혹

■ 눈(目), 눈(雪), 눈(芽)

이지우 작가 | 기사입력 2022/11/06 [07:55]

【이지우 생태에세이】 푸름에 홀릭…chapter 02. 야생적 유혹

■ 눈(目), 눈(雪), 눈(芽)

이지우 작가 | 입력 : 2022/11/06 [07:55]

▲ 이지우 작가, 약력: 『현대수필』 수필등단, 『시현실』, 시등단저서: 생태에세이『푸름에 홀릭』 2쇄 

 

 

나무는 봄부터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병충해 등을 견디며 길게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나이테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의 절정에서 고생한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린다. 철저히 겨울 준비가 끝났기에 미세한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나무와 이별도, 덜어내기 작업도 과감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자연에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기에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한다. 이런 모습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눈(目), 눈(雪), 눈(芽)

 

 

눈雪이 내린다.

 

시詩 수업을 받은 후 지하주차장에서 밖으로 나오니 어두운 잿빛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낼 겨울나무 공부 천마산인데 가실거죠?’ S의 문자를 받고는 대답 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앞을 가리며 내리는 함박눈과 문자 내용이 차창에 부딪혀 아른거린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할 차례인데….

 

다음 날 거리로 나오니 걱정과는 달리 도로 사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제 내린 눈 때문에 하얀 세상이다. 천마산 입구 경사지에서 차는 더 못 올라가고 벌벌 기어 간신히 어느 음식점에 앞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는 걸어서 목적지를 향했다.

 

눈目에 들어오는 눈雪의 풍경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 길가의 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잔가지는 휘어져 있다. 털어 주고 싶지만 경치가 아름다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러나 겨울 눈芽을 보려면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 내며 가지에 붙어 봄을 기다리는 눈芽을 보아야 한다.

 

▲ 눈미선나무 겨울눈

 

▲ 진달래 겨울눈     ©골든타임즈

 

 

 

 

 

 

 

 

 

 

 

 

 

 

 

 

 

▲ 앵도나무 겨울눈

 

▲ 개암나무 겨울눈에서 암꽃이 피었다.

 

 

 

 

 

 

 

 

 

 

 

 

 

 

 

 

 

 

친구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쩜 눈동자가 어린아이처럼 까맣고 흰자위가 파라냐고 묻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눈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한참 이야기를 한 후 마지막 이야기는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 미모가 안 되면 눈동자라도 예뻐야지.’ 그 후 검고 파란 눈동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어느 날 나무나 풀 공부를 시작하고 겨울나무의 눈芽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보통 겨울눈은 잎이나 탁엽이 변해 발달한 딱딱한 껍질인 아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린은 다음 해에 잎과 꽃이 될 어린 소기관을 추위나 외부의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발달하였다. 아린에 싸여 있던 싹은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잎과 꽃을 피우게 되는데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꼼꼼한 보호 전략을 쓰고 있었다. 눈의 위치나 눈의 기능에 따라 아린이 있느냐 없느냐와 나무껍질 속에 숨어있느냐 노출되어 있느냐를 관찰하며 수종을 알아내는 겨울눈 공부를 하러 이곳에 온 것이다.

 

피나무와 찰피나무의 차이는 피나무는 겨울눈에 털이 없고 찰피나무의 겨울눈에는 황갈색의 짧은 털이 밀생한다. 피나무를 절에서는 보리수나무라고 하는데 이 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도 한다. 물푸레나무의 겨울눈은 왕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멋진 겨울눈芽의 소유자이다.

 

때죽나무와 쪽동백의 겨울눈을 중생부아라 하며 눈이 눈을 어부바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그 외 쥐똥나무, 뽕나무, 괴불나무, 박쥐나무… 등. 수십 가지의 겨울눈芽과 눈 속에서 싸우다 보니 한계가 왔는지 단 몇 개의 특징도 기억에 없다.

 

잠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니 하얀 눈만 가득하다. 감히 자연을 쉽게 알려고 했던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접는다. 집주변에서 보던 나무들과 산속에서 보는 나무는 달랐다.

 

발품을 팔아 이 산 저 산으로 겨울눈芽 공부를 하러 다니는데 언제쯤 내 눈目이 저 자연 속에 있는 겨울눈芽과 인사를 해도 낯설지 않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내려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한데 하얀 눈을 밟으니 겨울눈芽을 알고자 했던 열망이 흰 눈雪이 되어 뽀드득거리고 있다. 겨울바람도 잠시 눈 속에 쉬어 가는지 조용하다. 겨울눈을 한꺼번에 알고자 한 성급한 마음을 천마산의 눈 위에 내려놓고 한 발 한 발 집으로 향한다. 뽀득거리는 소리만이 조용한 겨울 숲을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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