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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도성 밖 신도시, 돈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발간:골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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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도성 밖 신도시, 돈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발간

돈암동, 보문동, 삼선동 등의 토박이 5명을 지역활동가로 선정하여, 코로나19로 인해 접근하기 힘든 주민들의 생활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밀착 취재

조규원 기자 | 기사입력 2022/07/04 [12:13]

서울역사박물관 '도성 밖 신도시, 돈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발간

돈암동, 보문동, 삼선동 등의 토박이 5명을 지역활동가로 선정하여, 코로나19로 인해 접근하기 힘든 주민들의 생활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밀착 취재

조규원 기자 | 입력 : 2022/07/04 [12:13]

돈암 일대 한옥


돈암 일대는 1930년대 후반 조성된 도성 밖 대단위 주택지로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중산층의 거주지로 부상하였다. 해방 이후 정치,사회 및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었던 이곳이 아직도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지로 각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역사박물관장은 2021년 돈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도성 밖 신도시, 돈암 보고서를 2022년 6월 발간하였다고 밝혔다

박물관과 외부 연구기관이 협력하여 지역을 밀착 기록하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여 새로운 방법론으로 조사를 시행하였다. 대면 접촉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과 연구진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자로서 ‘지역활동가’를 활용한 것이다. 지역활동가는 돈암동, 보문동, 동선동, 삼선동, 안암동 등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으로서 지역 활동을 활발히 참여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아 최종 선정하였다.

지역활동가는 나이가 많으신 노령층에서도 참여할 수 있어서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어르신들의 기억이 지역의 역사로 기록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뜻깊은 사업이었다. 지역활동가에 선정된, 김춘선, 박춘선, 석순자, 윤병관, 최점순 님에게는 지난해 5월 위촉장이 수여되었다.

이번 돈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구기관과 함께 박물관이 공동 수행하였다. 시.시.한연구소와 성북문화원은 조사 지역에 위치한 기관으로서 기존에 지역과의 유대와 협력체계가 마련된 곳이었기 때문에 지역의 활동과 상황에 대해 민첩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모두 ‘우리 동네’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돈암 일대를 기록하였으며 주민과 함께 소중한 성과를 이루었다.

돈암 일대 주민들이 기억하는 우리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토박이들이 기억하는 오래전 모습을 그린 지도 ‘30년 전 우리 동네’는 지금은 고층아파트로 바뀐 돈암시장에 점포들이 즐비하고, 기와지붕의 한옥들이 여기저기 넓게 분포한 모습이다. 1990년대부터 돈암 일대는 도시 한옥이 대규모로 공급된 한옥 주거지였으나 현재는 다세대․다가구 건물과 아파트로 변모하였다. 마을지도 ‘우리가 먹은 시간’은 동네 주민들의 맛집인 태조감자국, 오백집 등이 꼼꼼히 그려져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하여 돈암 외 지역의 학생들이 생각하는 돈암을 지도로 그려보았다.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학생 12명이 참여하였으며, ‘다 같이 돌자, 동선동 한 바퀴’(인왕중학교 3학년 김예진), ‘역사 restaurant’(정신여자중학교 3학년 김하은) 등의 지도가 제작되었다. 돈암 일대에 대한 교육과 개별 현장 답사를 통하여 학생들은 돈암의 가장 특징적인 장소로 흥천사와 성신여자대학교를 꼽았으며, 그 외 돈암제일시장, 미아리고개 노래비, 한․중 평화의 소녀상도 인상 깊은 대상으로 인식했다.

돈암은 성북동에서 청계천으로 흐르는 성북천(안암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양옆으로 낙타산과 개운산이 자리하는 등 낮은 돌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이다. 조선시대에는 삼선평이라고 불리는 농촌 마을이었고, 산자락에는 풍경이 좋은 별서와 주거지가 있었다. 조선 후기 이덕무는 이 일대를 흰모래밭과 복숭아밭, 시냇가가 있는 평화로운 곳으로 시에서 그리고 있다.

근대기에는 넓은 땅 삼선평에서 야구와 축구 등 체육경기가 펼쳐지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늘어나는 경성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주거지로 돈암 일대가 선정되어 도성 밖에 최초의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1936년 근대 도시계획기법이 적용된 경성시가지계획의 일환으로 돈암 지구가 조성되었다. 돈암‧삼선‧보문‧동선‧동소문동 등에 도시 한옥이 대량 공급됐고, 도심과 연결된 전차의 종착지도 미아리고개 바로 앞이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주거지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으며, 소설가 박완서도 그중 한 명이다. 그의 소설 ‘그 남자네 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는 돈암 일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950년대를 전후로 돈암 일대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최초의 예술대학인 서라벌예술대학도 이곳에 자리 잡아 많은 문화예술인이 모여들었다. 지금도 이곳은 서울의 자치구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문화예술인이 사는 동네로 문화예술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돈암이 신도시로 건설될 무렵부터 이곳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낸 박영민부터 이곳이 좋아 정착한 새로운 거주자 김인규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술에 참여하였다. 박영민의 아버지는 돈암 건설에 한 축을 담당한 건설업자였으며, 김춘선은 약 70년 동안 미아리고개에서 거주한 토박이이다. 돈암에서 신동엽 시인은 ‘금강’ 등의 대작을 집필하였고, 무용가 조흥동은 한국 무용의 꿈을 키웠다. 돈암 시장에서 탄생한 감자국의 원조 ‘태조감자국’은 아직도 돈암 사람들이 찾는 맛집이며, 서울미래유산 1호인 나폴레옹과자점은 돈암 입구를 밝히고 있다. 성북경찰서에 오래 근무한 박윤락은 폭력조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흥천사 입구 연회장에서 근무한 한○○(익명)은 환갑잔치의 최고로 치던 이곳의 연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모초롱은 아직도 이곳에 울리는 돈암 성당의 종소리를 최고로 여기며, 돈암에 신혼살림을 차린 연극인 김인규에게 돈암은 애정의 장소다.

조사에 참여한 구술자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돈암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많았다. 그들은 돈암이 멋진 장소나 주목할 만한 공간은 없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이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07년 뉴타운개발로 사라지는 지역의 대한 기록조사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시작하여 2022년까지 39개 지역을 조사하였다.

재개발지역(반포, 왕십리 등), 시장(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 대학가(신촌, 홍대앞 등), 산업지역(인현동, 세운상가 등), 오래된 마을(북촌, 서촌, 동촌 등) 등을 기록하였다. 지역 단위의 생활문화를 매년 2개 지역을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사업을 시행하여 서울역사박물관의 백년사업으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할 계획이다.

2022년에는 서울의 동북부 경계로서 터미널, 공동묘지, 주택단지 등 근,현대 지역변화가 다양하게 구현된 장소로서 ‘망우동’과 조선시대 나루터 마을로 형성된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이자, 1970년대 조성된 주택지인 ‘천호동’을 조사하고 있다.

'2021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도성 밖 신도시 돈암'은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 숍, 서울책방 누리집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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