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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100년 전 그날

성별, 연령, 계급을 뛰어넘은‘시흥의 3‧1운동’을 만나다

조민환 | 기사입력 2019/03/04 [07:04]

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100년 전 그날

성별, 연령, 계급을 뛰어넘은‘시흥의 3‧1운동’을 만나다

조민환 | 입력 : 2019/03/04 [07:04]

군자면 거모리에서 광복을 축하하고 있는 군자면 주민들(1945.8.)

 

온 국민이 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비폭력‧평화를 표방한 전국적인 항일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며 민족 독립의 초석을 놓았다. 시흥시는 3‧1운동이 발생한 서울과 인접해 시위 초기부터 열기가 고조됐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 단발적 만세 시위였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 아래 15일 동안이나 지속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흥시가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지사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니 수암면 비석거리로 모여라”

 

1919년 3월 30일, 통문을 전해 들은 수암면 주민들이 수암리 비석거리로 모여들었다. 당시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윤병소 지사(1893~미상)도 이 소식을 듣고 수암리로 갔다. 그는 각 리에서 모인 2,000여 명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면사무소 근처까지 진출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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